감정평가사 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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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사 현업에서는 한 개의 물건을 평가하는 일뿐만 아니라, 수십 개에서 수백 개 필지를 동시에 평가하는 대량평가 업무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수습감정평가사 시절 처음 경험한 지적재조사 감정평가와, 그 과정에서 배운 현장조사·요인치·평가액 균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수습 시절에 지적재조사 목적으로 66개 필지의 감정평가를 하게 된 적이 있습니다.
지적재조사 목적의 감정평가 자체가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필지를 평가해 보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현장조사를 가기도 전부터 걱정이 많았었는데, 운이 좋게도 복수 평가를 하게 된 파트너 감정평가사님이 저희 법인 이사님과 동기셨습니다.
이사님께서는 저에게 일을 배정하시며 동기분에게 우리 수습 좀 잘 챙겨 달라고 전화를 거셨고, 아닌 게 아니라 파트너 평가사님께서는 정말로 저를 너무너무 잘 챙겨 주셨습니다.
같이 현장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파트너님의 내공이 엿보였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현장조사를 시작했을 텐데, 파트너님께서는 먼저 각 필지 번호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지도를 보시며 환경 조건에 따라 마을의 구획을 설정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동측 마을 큰 길을 따라 상업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필지들을 하나로 묶고, 상업용 필지에 바로 붙어 있는 주거용 필지들과, 좁은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의 북측, 남측 뒷산을 따라 오르막길에 위치해 있는 남측으로 구역을 나눴습니다.

어떤 식으로 현장을 돌아다닐지 구체적인 동선까지 정하고 난 후에야 드디어 현장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길이 달라질 때마다 노폭이 어느 정도 되는지, 경사가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꼼꼼히 메모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이왕이면 도로명 주소가 나오도록 찍어서 추후에 사진 분류를 용이하게 하였습니다.
지목 및 현황이 대지인 필지, 지목은 대지이지만 현황은 전답인 필지, 그 반대인 필지, 지목 및 현황이 전답인 필지를 구분하여 꼼꼼하게 체크하고 메모를 하였습니다.
66개 필지를 다 돌아보고 난 후에는 각 구역별 우열세와 가장 좋은 필지, 가장 안 좋은 필지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각자 요인치 작업을 해보기로 하고 현장조사를 마쳤습니다.
이렇게 기준점을 정하고 난 후 감정평가서 작성 작업을 하니 사무실에서 요인치 작업을 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작업을 하는 동안 수차례 파트너 평가사님과 통화하며 각자가 생각하는 각 필지의 평가액 수준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던 부분들, 실수했던 부분들, 필지별 균형이 안 맞는 부분들을 수정하는 데에도 또 시간이 한참 소요되었습니다.
사실 이쯤이면 얼추 다 된 것 같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파트너 평가사님께서는 계속 검토하고 또 검토하면서 더 정교한 평가액으로 수정해 나가셨습니다.
평가사님께서는 우리 입장에서야 엑셀에 숫자 하나일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니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 일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렇게 파트너 평가사님과 매일 같이 전화를 하며 한 달 남짓 고생을 한 후에야 감정평가서를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흘렀을까요.
어느 날 지적재조사를 담당하셨던 군청 주무관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번 지적재조사에서는 이의신청이 2개밖에 안 들어왔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사람들이 다 납득하는 평가서를 작성하셨냐는 전화셨어요.
저는 파트너 평가사님이 노력하신 덕분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게 사실이었고요.
사실 한 개 필지를 평가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토지 평가를 하면서 중요한 것은 결국 비교 사례보다 우세한지 열세한지, 그리고 그 정도가 대략 어느 정도인지입니다.
큰 틀에서만 맞으면 됐지 그 정도에 대해 상세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 필지 평가액을 산정하는 것은 금세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량평가는 여러 특성을 지닌 필지들이 한데 모여 있기 때문에, 세 항목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없으면 논리적이지 않은 결과물이 도출되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지들이 놓여 있는 입지에 맞는 적절한 기준을 세우고, 그에 따라 일관되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고 나서 도출된 최종적인 결과물이 합당한지도 여러 차례 꼼꼼하게 검토해 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대량평가를 처음 할 때 이렇게 좋은 선생님께 일을 잘 배워둔 덕분일까요.
그다음부터 회사에서 대량평가가 들어올 때마다 이사님들이 저를 배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지적재조사도 몇 번 연속으로 했었고, 30필지 정도 되는 소규모 가로주택정비 사업 초기 계획안을 한번 써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연말에는 이사님과 함께 둘이서 무려 600필지에 달하는 법인세 산정 목적 평가서도 썼습니다.
한 달 내내 사무실 한구석에 A0 지도 하나를 펴놓고 둘이서 메모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지요.
표준지 요인치를 하나만 바꿔도 수십 개 필지의 평가액이 출렁였습니다.
서로 다른 표준지를 적용하는 경계의 금액이 틀어지면 안 되다 보니 결국 경계선 인접 부분의 평가액까지 다 변경해야 했죠.
표준지 3개가 맞닿아 있는 구역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흡사 예술의 경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원래 수습 때는 처리비가 없지만 이사님께서는 해당 건으로 받은 처리비를 전부 저에게 주셨습니다.
최저 시급의 수습 월급이었지만 이사님 덕분에 12월 한 달만큼은 따뜻했어요.

이렇듯 대량평가를 더 자주 처리하게 되니 일의 능률도 오르고, 능률 있게 처리하니 더 많이 배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더 자주 처리하다 보니 더더욱 능률이 오르는 성장의 선순환 구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선물해 준 첫 단추는 누가 뭐래도 수습 시절 첫 지적재조사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친절하셨던 파트너 평가사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 후배 평가사들에게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선배 평가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여러 선배님들처럼요.
그런 멋진 선배가 되기 위해 열심히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정평가사 하는일은 단순히 가격을 산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현장을 구획하고, 기준을 세우고, 여러 필지 사이의 균형을 맞추며, 그 결과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지적재조사 감정평가와 같은 대량평가에서는 이러한 책임감과 일관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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